우리 나라와 民族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人品과 人間味 속에서 빛나는 叡智를 밝혀주셨던 雲庭 金鍾泌 총재님이 우리 곁을 기어이 떠나셨습니다. 실로 애끓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총재님은 누가 무어라 해도 오늘의 豊饒한 大韓民國, 배고프지 않고 自由와 民主를 만끽하는 오늘을 있게 하신 분이십니다. 數多한 迂餘曲折 속에 波瀾萬丈한 現代史를 온몸으로 써내려 오신, 時代의 先覺者이시요 위대한 指導者이십니다.

내뻗는 革命兒의 氣象으로 祖國近代化를 설계하고 行動으로 心血을 기울여 이 나라 産業化의 土臺를 구축하는데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産業化의 基盤위에 民主化가 싹을 틔우고 成長할 수 있었던 것은 世上이 다 아는 일입니다.

“無恒産이면 無恒心”이고“民主主義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고 자란다.”는 총재님의 말씀이 새삼 귓전에 쟁쟁합니다. 총재님의 生涯와 그 貢獻은 아마도 우리 現代史에서는 前無後無할 정도로 莊嚴할 것입니다. 35세의 革命, 두 차례의 總理 歷任과 9選의 國會議員, 네 번에 걸친 政黨 總裁, 또 무수한 先進的 團體의 결성과 활동 등은 우리나라 國政과 政治發展에 얼마나 至大한 寄與를 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총재님께서는 産業化 추진과 政治發展이라는 國家的 大業의 뒤 안에서 겪은 苦惱도 필경 컸을 것입니다. 목숨을 건 革命, 賣國奴의 陋名을 쓴 韓日協商, 두 차례의 쫓겨난 外遊, 2人者에 대한 監視와 牽制, 新軍部의 彈壓과 亡命, 反撥 속의 合黨과 聯合 등등 총재님의 半世紀 政治歷程은 한편의 大河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苦楚를 笑而不答으로 꿋꿋이 이겨내시고 周圍를 다독이며 아우르던 모습에 사랑과 尊敬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시대의 風雲兒이셨던 우리 總裁님, 당신이 겪으셨던 苦難의 歷程을 이렇게 다시 떠올리면서 慰勞와 感謝를 드립니다. 총재님과 무릎 가까이 親熟하던 우리들은 지금 永訣의 시간을 맞이하면서 총재님의 그 溫和한 微笑, 多情多感한 音聲, 少年 같이 맑은 靈魂을 기억합니다. 고매한 人格에서 우러나오는 經綸과 智慧, 손에서 책이 떠날 줄 모르는 知性, 未來를 통찰하는 叡智, 그리고 끝없는 나라사랑... 총재님은 우리의 永遠한 스승이십니다.

우리는 총재님께서 希求하셨던 崇高한 精神을 가슴에 품고 世代를 이어 나아가겠습니다.

總裁님, 지금껏 쌓였던 이승의 煩惱가 있었다면, 이제 모두 내려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먼저 가신 師母님과 함께 평안히 永眠하시기를 삼가 祈願합니다.

感謝합니다.

여기 이렇게 이 나라, 이 民族, 또 우리를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8년 6월 27일

장례위원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